여자를 위한 사랑의 판타지 '할리퀸 로맨스' by Y
그림 출처 (http://blog.naver.com/martinar)
할리퀸은 캐나다 로맨스 소설 전문 출판사로 매달 200 페이지나 55,000 단어수를 넘지 않는 짧은 로맨스 소설을 12권 정도씩 출판하고 있다. 이 소설들을 1986년부터 우리나라의 신영미디어 출판사에서 '할리퀸 로맨스'라는 시리즈로 내놓기 시작했고, 그 후로 우리나라에서 '할리퀸 로맨스'는 로맨스 소설을 대표하는 시리즈가 되었다.
할리퀸 로맨스는 지금의 태블릿 정도 크기의 작은 책으로 유명한데 두께도 태블릿과 비슷할 정도로 분량이 작은 책이다. 그 작은 분량에 남여 주인공의 만남과 갈등, 화해를 통한 사랑의 결실이 모두 포함되어야 하므로 주변 인물들의 등장은 아주 적은 분량으로 한정되고, 배경 묘사나 스토리 라인도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대부분의 분량을 남여 주인공 사이의 감정이나 행동을 묘사하는데에 할애하다보니 할리퀸 로맨스는 문학성이 떨어지는 B급 로맨스라는 인식이 생겨나게 되었다.
하지만, 분량이 적어 나타나는 단점도 있는 반면에 그로 인해 나타나는 중독성이나 매력도 무시할 수 없는 정도라 할리퀸 로맨스는 전세계에서 1초에 무려 4권이 팔려나간다는 초절정 인기 시리즈가 되었다. 전세계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만 살펴봐도 여자들 중에 10대~40대 사이에 할리퀸 로맨스를 한 권도 안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할리퀸 로맨스의 매력이라면 뭐니뭐니해도 여자들의 니즈를 완벽하게 충족시켜준다는 점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여자 주인공도 경제적인 자립권을 가지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등장하곤 하지만 할리퀸 로맨스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자 주인공은 남자 주인공을 통해 경제적, 성적인 성장을 이루는 신데렐라로 등장했다. 내가 예전에 중고 서점에서 500~1000원에 구입해서 보던 신영미디어의 할리퀸 시리즈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들은 착하고 아름답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고, 성적인 경험이 아예 없거나 거의 없었다. 반면에 남자 주인공은 거의 예외 없이 능력있는 자산가로 등장하며 바람둥이인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의 남여 주인공의 관계가 사장과 비서, 공작과 자작의 딸, 농장 주인과 하녀 등이었으니 여자들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강한 남자를 동경하는 신데렐라 환타지는 확실하게 충족시켜줬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남여 주인공이 동등한 입장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긴 하다)
할리퀸 로맨스 시리즈는 10대가 보기에 충격을 받을 정도로 성적인 묘사 등의 수위가 높은 편이었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할리퀸이 캐나다 출판사이고, 작가들도 서양 작가인데다가 할리퀸 시리즈 자체가 20~40대까지 폭넓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남여 주인공도 모두 서양인이고, 배경도 서양이라 그나마 받는 충격이 덜했던 듯?^^;) 하지만, 할리퀸 로맨스에 묘사되는 성적인 묘사는 흔히 말하는 야설과는 매우 다르다.
할리퀸 로맨스 '왕자의 스캔들 by 린 그레이엄'의 내용을 보자.
짙은 금빛 눈이 그녀의 통한 입술을 태울 듯 응시했다.
“누구를 위해서? 당신도 날 원하잖아. 이 감정이 상호적이라는 걸 부인하지 마.”
그 대담한 말에 엘리노어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녀는 서툰 동작으로 가운의 허리끈을 묶었다. 자심은 대단히 자신만만하게 말했고, 솔직히 좀 두렵기도 했지만 그의 그러한 자신감은 추운 날의 모닥불처럼 그녀를 끌어당겼다.
“하지만 그걸로는 충분치 않아요.”
엘리노어는 여전히 빠르게 자신의 통제권 바깥으로 흘러가는 듯한 상황을 붙잡기 위해 노력했다.
자심이 그녀의 가는 손목을 잡고서 자신에게 끌어당겼다.
“이건 그저 시작일 뿐이야….”
할리퀸 로맨스에서의 스킨쉽 묘사는 위의 내용처럼 적나라하기보다는 그 당시의 남여의 감정과 분위기에 더 치중하는 편이라 앞뒤 자르고 읽으면 오글거리는 내용이 태반이다. 여자는 아무래도 분위기에 약한지라 멋진 분위기 묘사에 약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할리퀸 로맨스에 등장하는 스킨쉽 묘사가 두리뭉실하게 분위기나 마음만 묘사하다가 끝나는 수위는 아니다. 단지 보통의 야설처럼 적나라하거나 행위에만 집중하지 않을 뿐, 여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 정도는 충분히 된다능~
할리퀸 로맨스에서 스킨쉽은 사랑하는 감정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첫눈에 반해 자신의 감정의 정체를 모르는 상태에서의 스킨쉽도 있지만 대부분 첫눈에 반하면서 시작되는게 사랑이라고 본다면 이 또한 사랑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즉, 여자들이 원하는 나를 사랑하는 (최소한 나에게 반한) 남자와의 스킨쉽이기 때문에 거부감이 없다. 대부분 여자는 나만을 사랑해주고 나 또한 사랑하는 남자 즉, 감정이 깔린 스킨쉽을 낭만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론은 할리퀸 로맨스는 여자들의 모든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소설이라는 것~!
나에게는 이젠 추억이 되어버렸지만 할리퀸 로맨스는 아직도 꾸준히 출판되고 있고, 더불어 좀더 진화된 로맨스류도 출판되고 있다. 또한 2000년 이후로 우리나라 작가들의 로맨스 소설도 나오고 있으며, 만화로 나오는 할리퀸 코믹스도 인기다. 할리퀸 코믹스의 경우 10대를 겨냥한 듯 그림체가 매우 순정만화스럽고 스킨쉽 수위도 낮은 편인데, 스토리 라인은 예전의 할리퀸과 같아서 반갑다. 단지, 만화다보니 내용이 책만큼 충분히 꽉 짜여져 있지 않은 점은 조금 아쉽다.
10대~20대 초반에 열심히 보았던 할리퀸 로맨스인데 얼마 전에 다시 보니 다소 유치하긴 했지만 그래도 재밌더라..;;;
역시 여자는 나이가 들어도 여자인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