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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1.20 판타지 무협소설 묵향에 빠지다 by S 4
생활공감/책#만화2013. 1. 20. 18:34

 

 

 

 

 

무협이나 판타지를 즐겨읽지 않는 사람들도 한번쯤 들어봤을법한 너무도 유명한 전동조 작가의 묵향.

 

내가 어렸을 적 아빠가 유난히 무협을 좋아하셔서 중국무협영화를 즐겨보시거나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보시려고 무협소설책 표지를 하얀 달력으로 싸가지고 다니셨던 기억이 난다.
물론 지금 흔히 나오는 무협소설보다야 그 당시는 훨씬 진중하고 한문이 난무하는 책이였지만 어려운 책인줄만 알고있던 나는 15년후 쯤 내가 무협소설을 즐겨보면서 진중하셨던 아빠가 정말 이런책을 보셨던거야? 라는 생각에 기분이 묘했던 적도 있다.
물론 아리랑 같은 장편소설도 많이 읽으시긴 했지만...

 

 

 

 

어쨌든 내가 처음 접했던 판타지소설은 고등학교때 봤던 드래곤라자였다.
만화책을 즐겨보던 내가 처음으로 책에 빠져들어 그 당시 밤을 새가며 봤을 정도지만 지금은 너무도 오래된 탓인지 아니면 그 한참 후 판타지소설을 너무 많이 봤기때문인지 사실 지금에 와서 기억나는거라곤 힘이 좀더 쎄지는 오우거장갑(?)이랑 후치라는 독특한 주인공 이름뿐이다. (기억력이 그닥 좋지 않기에-_-;;)
지금 생각해보면 드래곤라자는 지금의 판타지 소설들과 비교해 내용이 허황되지 않고 너무 담백하다고 해야되나...주인공의 능력과 역할이 지금에 비해 너무 협소하다고 해야하나...
툭하면 드래곤과 대면하고 기연을 얻어 능력이 강해지는건 다반사요 유일한 아티팩트를 잘도 획득하고 봉인을 풀어제끼는건 기본이요 왠만한 적들 혼자서 다 무찌르는 지금의 판타지계를 생각해볼때 어찌보면 지극히 사실적이다.

(물론 판타지 세계에 사실적이라는 표현자체가 아이러니 하지만...)

 

물론 한국최초의 판타지 세계관의 기초를 마련했다는거에 아주 큰 의미가 있는 책이지만 유치하게도 먼치킨류의 천하무적 주인공을 좋아하는 내 취향으로 봤을때 드래곤라자는 또 다시 찾아서 볼만큼의 매력을 가지고 있진 않다.
이미 그런류의 판타지 소설이 너무도 방대한 스케일로 발전해 수많은 내용의 모험과 개성있는 주인공들이 쏟아져나오는 지금 다시 그 책을 읽으면 처음 봤을때의 감동과 재미를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난 7~8년 전 한참 우리나라 판타지 소설들을 보면서 대체 이것들이 반지의 제왕보다 못할게 뭐가 있나...이것들을 영화로 표현해낼수 없는 우리나라 현실이 안타깝구나라는 생각까지 했으니까 뭐...

 

 

 

 

또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놨지만 묵향은 내 판타지 무협소설의 진정한 시발점이 된 소설이다.
가게를 오픈하고 한가했던 탓에;; 근처 대여점에서 책을 빌려보기 시작했는데 그 당시 볼만한 만화책을 이미 다 섭렵했던 내게 판타지 무협소설은 너무나도 완벽한 신세계였다. 
그 당시 유명했었던 무협소설 묵향을 처음 접하고 무협 판타지에 미친듯이 빠져들어 2년간 어디서나 거의 소설책을 끼고 살았으니까...(그나마 만화책에서 책으로 넘어가니 엄마가 더 이상 잔소리를 안하시더라 ㅎㅎ;)

 

나는 특이하게도 너무도 정의롭고 정직한 주인공을 싫어한다.
그 답답한 성격때문에 남을 쉽게 믿다가 중상모략에 빠지고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는걸 보는건 읽는내내 스트레스만 받는다.
오히려 주인공이 조금 비열하더라도 머리가 좋아 그런일을 당하지않고 역이용해서 상대방에게 혼쭐을 내주는게 훨씬 통쾌하고 보는맛이 있다.

 

그런면에서 묵향이라는 이 특이한 성격의 주인공은 내 취향에 딱 들어맞는다.
아마 묵향이라는 소설이 크게 인기를 얻어 유명해진데에는 그동안의 정도를 걷는 주인공들의 성향과 다른 이러한 면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마교라는 어찌보면 무림의 악으로 분류되고 철저히 외면되는곳에서 양육강식이라는 그들만의 규율과 법칙으로 살아가는 그들.
묵향이라는 책속의 세계관에서는 주인공이 마교의 인물인 만큼 정파를 좋게만도 마교를 나쁘게만도 표현하지 않는다. 선악이 분명한 여타의 책들과 다르게 그들 각자는 자신의 위치에서 본 문파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할뿐 쓸데없는 희생과 정의감따윈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것들을 고스란히 대놓고 표현하는 단순한 마교에 비해 세간의 이목을 살피느라 속내와 다르게 가식적인 행동을 일삼는 정파의 인물들이 좋게 그려질리 없다. 그래서 더욱 나에겐 설득력이 느껴진다.

 

물론 알고보면 마교의 인물들이 더 좋은 녀석들이더라...라는 뜬금없이 말도 안되는 세계관도 아니다. 충성심이라 보여지는 것들이 철저히 양육강식에서 비롯한 단순한 법칙 하나때문이라고 본다면 그곳에는 분명 정파보다 더한 배신과 모략이 난무하니까...  

그런곳에서 키워지고 자란 주인공인 묵향은 당연히 정의롭지 않다.

좋고 싫음이 분명하고 기분 내키는 데로 행동하는 제멋대로인 인물이다.
자신에게 호감주는 인물과 쓸모있다 생각되는 사람에겐 그래도 성의를 보이지만 그 외의 인물에게는 남녀노소구분없이 심하다 싶을정도로 가차없다.
고수로서의 풍모나 위엄이라던가 절대자로서의 자비심따위는 찾아보기 힘들고 어쩔때보면 야비하다 싶을정도로 못되먹고 황당한 성격이지만 신기하게도 그에겐 묘한 매력이 있다.
강하게 나가면 절대 안들어주다가도 잘 달래면서 부탁하면 오히려 들어주는 약한 면모도 가끔 보이고 본인이 맘에 든 사람한테는 대가없는 친절을 베풀기도 하고... (물론 그 방법때문에 항상 오해를 사곤 하지만)
그래서 쓸데없이 적을 만드는 타입이지만 그 오해를 굳이 풀려고 노력하거나 변명따윈하지 않는다.
게다가 엄청나게 강하기까지 하니 참으로 멋진 남자가 아닌가.
내 취향이 특이한 걸지도 모르지만 뭐 소설이니까...;;

 

그가 무림에서 판타지로 넘어갔을때도 나에게 판타지라는 장르의 세계관을 확립시키며(드래곤라자는 이미 한참전이라 기억나지 않는 때였기에...) 이후 읽는 판타지소설에 큰 영향을 준건 말할것도 없다.

책 대여점이 문을 닫는다고 책들을 헐값에 처분할때 가장 먼저 업어왔던 책 묵향. 한권한권 나올때마다 앞권을 읽으며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길 몇 년.


그랬던 그가...묵향이 죽고 판타지계에서 새로 태어나 전혀 그의 이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글을 우연히 접하고 아직까지도 차마 28권을 읽지 못하고 있다. ㅠㅠ (그가 죽는것도 보고싶지 않으니까...) 

작가가 차라리 무림으로 돌아와 잘 마무리해서 끝낸 후 새로운 책으로 낸거였다면...묵향작가의 책이니 즐거운 마음으로 읽어봤을테지만 묵향이라는 제목으로 약해빠진 전혀 다른 성격의 다른 인물을 그리고 있다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런거 싫단 말이야 !!!!!! 나의 묵향을 돌려달라~~~~~~~!!!!!!
그 녀석이 각성하고 묵향으로 돌아오지 않는 이상 전혀 읽고 싶지가 않단 말이닷!!!!!!


일년에 한 두권정도 나오는 연재속도로 어느 세월에 다시 진정한 묵향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 느려터진 연재와 가끔 산으로 가는 내용에 남들이 아무리 뭐라해도 항상 내 마음속에 무협판타지소설 베스트에 자리잡고 있던 이 소설을 이제는 그만 떠나보내야 하나 참으로 고민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20대를 함께한 소설 묵향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기에...

 

 

 

 
 
 
Posted by 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