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공감/미스테리2018. 4. 18. 02:35

 

 

 








위자보드의 간단 역사


1. 1890년 엘리야 본드와 워싱턴 보위가 회사를 세우고 강령술 게임용품으로 출시


2. 1891년 2월, 장난감 상점 등에서 1.5달러에 판매 시작, 나무 재질임


3. 위자보드는 수백만개가 팔려 모노폴리보다 많이 팔린 대중적인 가정용 게임이었다.


4. 1973년 영화 엑소시스트에서 리건이 위자보드를 하는 장면이 삽입되면서 대중에게 악마의 도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1973년 엑소시스트 속 위자보드





위자보드와 관련된 유명한 사건들



1920년

뉴욕에서 도박꾼 조셉 버튼 엘웰의 미스테리한 살인 사건을 위자보드에게 얻은 단서로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함


1921년

시카고의 한 여성이 정신과에서 위자보드의 영혼이 자신의 죽은 어머니의 시체를 뒤뜰에 묻기 전 15일 동안 거실에 두라고 했으며, 자신은 정상이라고 말했다고 했음


1930년

뉴욕의 버팔로에서 두 명의 여자가 죽었는데 범인 여성은 위자보드의 영혼이 시킨 일이라고 했다.


1941년

뉴저지 주의 23세 주유소 직원은 위자보드의 영혼이 시켜서 육군에 합류했다고 함


2016년

페루 학생들 사이에서 위자보드게임이 유행함

페루의 '엘사 페레아 플로레스' 중학교에서 한달안에 80여명의 학생이 발작을 일으킴

모든 학생들이 검은 옷의 남자를 보고 발작을 일으켰다고 증언함

학교건립당시 많은 유골이 발견됨(테러사건, 마피아 무덤 등의 소문이 돔)

집단 히스테리 증상? 학교의 유령을 게임으로 불러내서?





위자:저주의 시작





위자보드는 과연 악마를 부르는 게임인가?

분신사바와 콧쿠리상은 위자보드와 무엇이 다를까?







위자보드에 대한 자세한 내용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한 게임이라 외국 문서를 많이 참조했습니다.)







 

 

 
 
 
 


Posted by Y&S
생활공감/미스테리2018. 4. 15. 00:24

 

 

 

 

 

 

바베이도스의 움직이는 관이란?

19세기 초(1812~1820), 카리브 해 섬나라인 바베이도스에서 교회 묘지의 지하 납골당 안에 있던 관들이 움직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 납골당의 역사(깊이 12 피트, 폭(가로) 약 6 피트(180cm))

바베이도스 남부 해안의 Oistin's Bay 근처의 크라이스트처치 교구 교회의 공동 묘지 중 서쪽 끝에 위치

1724년 - 제임스 엘리엇에 의해 건축

1792년 - 제임스의 부인 엘리자베스가 안치됨

중간에 월론드 가에게 팔림

1807년 - 월론드의 친구 토마스나 고다드 부인이 안치됨(0번째 사건)

1808년 - 토머스 체이스가 가족묘로 사용하기 위해 구입

 

 

 

0번째 사건

제임스 엘리엇의 부인 엘리자베스가 1792년 처음으로 이 납골당에 안치됐는데 1807년 고다드 부인을 안치하기 위해 납골당을 열었을 때 관이 사라졌다 -> 엘리자베스 뱀파이어설이 퍼짐

 

 

 

영국의 귀족 '토머스 체이스'

1798년에 서인도 제도의 섬나라 바베이도스로 이주

노예 뿐만 아니라 섬의 원주민에게까지 비인간적으로 가혹하게 대해 악명이 높았음

1808년 가족묘로 사용하기 위해 바베이도스에 납골당 구입

 

 

 

 

※ 이후 납골당에 들어간 시신의 순서

 

1807년 - 토머스가 죽기 전 고다드 부인(Thomas Ordi Goddard, 1807년 7월 31일 사망)이 납골당에 안치됨 -> 유일한 나무로 된 관

 

1808년 - 토머스의 2살된 딸, 메리 앤 마리아(2월 2일) 납골당에 안치됨

 

1812년 - 토머스의 또다른 딸(십대 딸, 1812년 7월 6일 사망) 도커스 납골당에 안치됨

죽음 자체가 미스테리(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하다가 굶어죽었다는 소문이 있음)

 

1812년 8월 9일 - 또다른 딸이 죽은 후 토머스는 자살함

 

1816년 9월 25일 - 찰스 브루스터 에임스(물놀이를 하다 익사, 토머스의 친척, 11살)

 

1816년 11월 17일 - 사무엘 브루스터, 이해에 노예들의 반란이 일어남, 또 다른 가설 - 노예들의 폭동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설

 

1819년 7월 17일 - 토마시나 클라크(Thomasina Clark) 부인(사망한 친척)

 

 

 

 

첫번째 사건 - 1812년 8월

토머스 관을 안치하기 위해 납골당 문을 열었을 때

두 딸의 관이 벽에 세워져있었음(메인 앤 관이 거꾸로 세워져있었음)

누군가가 뒤집어놨겠거니 생각, 자리가 부족해 토머스 관 위에 도커스의 관을 겹쳐놓음

(한편 토머스의 폭정이 소문이 자자해 인과응보라고 생각하기도 함)

토머스 관이 안치된 후 원주민이 납골당 내부에서 빛이 나고,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고 함

 

 

 

두번째 사건 - 1816년 9월

찰스 브루스터 앰스를 안치할 때도 관들이 흩어짐

 

 

 

세번째 사건 - 1816년 11월

-> 52일 후 사무엘 브루스터를 안장하기 위해 납골당 문을 열었을 때 관들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짐

고다드 부인의 관이 부서져 벽에 세워져 있었고(나무관이라 나머지 무거운 납으로 된 관들에 부딪쳐), 시체가 바닥에 있었음

고다드 부인의 유골은 따로 수습하여 새 관에 넣어 딴 곳으로 이장

바베이도스에서는 납골당의 사건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짐(토머스의 폭정을 당한 흑인 노례들이 원한 때문에 납골당을 헤집어놓았을 거라는 소문이 가장 많이 퍼짐)

무덤 속의 비명 소리를 듣거나, 지나가는 말의 소리가 들려온다는 이야기 또한 점점 더 널리 퍼짐

 

 

스태플레톤 코튼(Stapleton Cotton) - 그 당시 총독

1819년 7월 7일 토마스티나 클라크 부인이 납골당에 안치될 예정이라

관심을 가지고 코튼 총독도 장례식에 참가함

 

 

 

 

네번째 사건 - 1819년 7월

토마시나 클라크 부인의 관을 납골당에 안치하기 위해 문을 열었을 때

관들은 흩어져있었음. 클라크 부인의 관도 나무관이었음

 

코튼 총독은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

모든 관을 제자리로 놓고, 바닥에 모래를 잔뜩 뿌리고

입구를 봉인한 후 돌로 된 인장을 부착

 

 

 

 

다섯번째 사건 - 1920년 4월

코튼 총독, 총독부 관리들, 토마스 오더슨 목사가

다음 해인 1820년 4월 18일, 납골당 내부를 확인하기 위해 열었을 때

벽을 부수고 문을 열어 내부를 확인하려 했지만 납골당 문이 열리지 않음

결국 공구까지 사용해 힘들게 열음

-> 토머스의 관이 세워진 상태로 문을 막고 있었음(그래서 문이 안열림)

6개의 관들이 여기저기 흩어짐(일부는 거꾸로 뒤집어져있었고)

메리 앤의 관이 벽에 세게 던져져서 관 모서리가 부서져 있었음

입구에 붙인 봉인과 바닥의 모래가 모두 그대로였음

이후 바베이도스 주민들이 공포에 떨게 됨

 

 

 

 

 

 

결국 납골당의 관들이 전부 영국으로 이전되며, 이후에는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다.

왜 이와같은 일이 일어난 것일까???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유투브를 참고해주세요^^

(자료들의 내용이 조금씩 달랐는데 저희는 여러 해외자료를 바탕으로 참고했습니다.)

 

 

 

 

 

 

 

Posted by Y&S
생활공감/미스테리2018. 4. 11. 23:43

 

 

 



뮤지컬 스위니토드



사람들이 흔히 영국 런던의 도시괴담으로 알고 있는 유명한 잔혹한 살인마 이발사 스위니토드가 실존인물이라 주장하는 인물들이 있다.


바로 '식인 사이코패스가 몰려온다' 저서의 저자 대니얼 디엘과 마크 도널리이다.

그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실존했던 인물(스위니토드)가 사람들에게 오랫도록 회자되다가 사실이 조금씩조금씩 계속 왜곡되고, 결국엔 현대에는 허구적인 인물(뮤지컬이나 영화 등을 위한 허구적인 주인공)로 여겨지게 된거라고 한다.







이 책에서 스위니토드가 실존인물이라고 주장하는 근거



1. 다음날 데일리 커런트(Daily Courant)에 실린 기사


목베는 이발사

소름끼치는 살인이 플릿가에서 발생했다. 피해자는 런던에 있는 친척을 찾아 시골에서 올라온 젊은 신사였다.

도시를 구경하던 신사는 성 던스턴 교회의 시계탑을 바라보며 감탄하던 참에, 마침 지나가던 사람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지나던 사람은 이발사 옷을 입었다고 한다.

두 남자는 긴 대화를 나누었는데, 도중에 갑자기 이발사가 품에서 면도날을 꺼내 남자의 목을 가르더니 그 즉시 헨 앤 치킨 법원 골목길로 사라졌고, 그 후로는 아무도 그 남자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2. 마저리 로빗 부인이 자백한 내용이 [런던 연대기(London Chronicle)]에 실렸다.


나 마저리 로빗은 목숨을 걸고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백한다.

스위니 토드는 함께 범죄를 저지르자며 내게 먼저 제안했다. 그는 벨 야드에 건물을 사서 건물 지하를 파고,

이곳을 성 던스턴 교회 오른편 지하실과 연결했다.

그는 모든 환경을 조성해놓은 뒤 내게 제안을 했고, 나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가 파이 가게를 열자고 제안한 목적은 단 하나, 이발소에서 죽인 사람들의 시체를 처리하는 것이었다.

그는 많은 사람을 죽였다. 장사는 잘 되었고 가게는 번창하여 우리는 둘 다 부자가 되었다. 그렇게 해서 현재까지 오게 되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스위니토드의 이야기는 뮤지컬이나 영화와 비슷한 부분도 많지만 다른 부분도 꽤 된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유투브 영상에 나와있음~











 

 

 

 


Posted by 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