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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5 - [Y&S의 수다/Y 이야기] - 세계적인 연쇄 살인범 31인 ① - 1위부터 10위까지 by Y
추가글(2014/3/7)
이 글을 라이프지 한글 번역으로 알고 계신 분들이 있는데, 이 글은 라이프지 발표에서 살인마 이름만 참고하고 무려 사흘에 걸쳐서 자료를 찾아 일일이 정리한 글입니다.
그러니 번역으로 착각하시고 그대로 퍼가지 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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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Harold Shipman
해럴드 시프먼(영국, 1946년 1월 14일 ~ 2004년 1월 13일 자살)
해럴드 시프먼은 공식적으로 215명을 죽인 영국 최대의 살인마다.
시프먼은 어렸을때 사랑하던 어머니가 말기암 환자로 고통받다가 죽는 걸 보았고,
어머니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의사들이 모르핀을 주사하는 것도 보면서 자랐다.
후에 의사가 된 시프먼은 근무 중 발작하다가 기절하는 경우가 많았고
모르핀 중독과 공문서 위조 등으로 근무하던 병원에서 해고되기도 했다.
갱생원에서 모르핀 중독을 치료한 시프먼은
1992년부터 맨체스터 근교의 작은 도시 하이드에서 의사로서 근무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해부터 그 지역의 건강하던 노부인들이 돌연사로 죽기 시작했다.
그 후에도 꾸준히 노부인들이 집에서 돌연사로 죽는 일이 일어났지만
자상하고 친절한 의사 이미지였던 시프먼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던 중 2000년 80세의 노부인 캐슬린 그룬디가 돌연사한 후
전재산을 시프먼에게 상속한다는 유서가 발견된다.
이에 시프먼은 유서 조작 혐의로 구속되고 노부인의 사인이 의심스러워
시행된 부검에서 모르핀이 다량 발견되면서 시프먼의 살인 행각이 밝혀지게 된다.
2000년 1월 구속된 시프먼은 재판에서 15명의 살인 혐의로 종신형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 후 영국 정부에 의해 실시된 재조사에서 시프먼이 279~345명을 죽인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공식적으로 그가 살해한 피해자는 215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시프먼이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인 이유는 '살해하는 순간의 흥분' 때문이었다고 한다.
12. The BTK Killer
데니스 L. 레이더(1945년 3월 9일 ~ 현재 수감 중)
'BTK'라는 별명은 레이더가 자신에게 붙인 별명으로
'Bind(묶다) Torture(고문하다) Kill(죽이다)'의 약자이다.
데니스 레이더는 많은 사람을 죽여서 악명이 높아진 경우가 아니다.
처음 살인을 저지른 후 30년 동안 붙잡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살인을 저지를 때마다 언론사에 조롱하듯이 편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의 첫 살인은 대학생 때인 1974년이었는데 5명을 죽인 후 지역 신문사에
살해 과정과 자신이 범인이라는 주장을 담은 편지를 보낸다.
경찰은 이 편지가 캔사스 주립대학의 한 복사기에서 복사된 사실은 밝히지만
범인을 찾는데는 실패한다.
레이더는 3년 뒤인 1977년에 2명을 살해하고 같은 방법으로
신문사에 편지를 보낸 후 10년 뒤인 1986년 8명을 살해한 후 또다시 잠적한다.
이때쯤엔 레이더에게 경찰과 언론사를 상대로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그래서 16년 뒤인 2000년 레이더는 신문사에 1986년에 자신이 살해한
비키 위거리의 시체 사진과 운전면허증을 동봉하고
자신이 1939년생이며 2차 대전 참전 용사이니 잡아보라는 내용이 적힌 편지를 보낸다.
(1945년생인데;; 잡히긴 싫었던듯;;)
하지만, 역시 경찰은 그를 잡지 못했다.
그 후 2005년 레이더는 한 장의 디스크를 언론사에 보냈는데
이 디스크의 아이피를 추적하던 경찰에 의해 그가 운영위원장으로 있던 교회가 발각되고
교회 주변 인물들 중 1974년 캔사스 주립대학 학생이었던
데니스 레이더가 의심스러웠던 경찰의 은밀한 수사 끝에 결국 검거되게 된다.
(아마 그가 잘난척을 하느라 자꾸 단서를 보내지 않았다면
그는 아직도 범행을 저지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캔사스 위치토의 공무원이었으며 두 딸의 아버지이기도 했던 데니스 레이더는
40년동안 가석방이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13. Yoo Young-Chul
유영철(1970년 4월 18일 ~ 현재 수감 중)
유영철은 2003년부터 2004년까지 20명을 살해한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이다.
가난한 부모의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나 14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고등학교 때 학교생활을 적응하지 못해 자퇴하였으며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1995년 이후에는 경찰을 사칭하며
불법유흥주점이나 노점상을 상대로 갈취행위를 하며 지냈다.
1991년 결혼한 후 아들을 낳았지만 절도 및 성폭력으로
11년을 여러 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다가
2002년 부인에게 이혼당하고 대인기피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2003년 9월 교도소에서 출소한 유영철은 서울에서 노부부를 살해한 후
부유층 노인이나 보도방, 출장마사지사 여성 등 총 21명을 살해했다.
(후에 이문동 살인사건의 진범은 또 다른 연쇄 살인범인
정남규라는게 밝혀졌으니 사실상 유영철이 살해한 사람은 20명이다)
2004년 체포된 유영철은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아직 집행은 되지 않은 상태다.
14. The Yorkshire Ripper(요크셔 리퍼)
피터 서트클리프(영국, 1946년 6월 2일 ~ 현재 수감 중)
피터 서트클리프는 매춘부를 포함한 여성을 13명을 살해한 영국의 연쇄살인범이다.
영국은 그를 잡기 위해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수사를 벌이고도
(20만명이 넘는 시민에게 탐문 수사를 하고, 서트클리프 본인도 9번이나 탐문을 받았었다.)
5년이나 걸린 후에야 그를 검거할 수 있었다.
서트클리프는 사랑하고 존경한 어머니를 흉포하게 다루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
모든 여성을 헌신을 바쳐야할 대상과 죽어 마땅한 대상으로
양분하여 바라보는 사람으로 자라게 된다.
그는 28세에 결혼하고 트럭운전수로 일하면서 평범한 가정을 꾸렸지만
1975년 지나가는 여성을 습격하여 망치로 기절시키고
칼로 하체를 공격하며 첫 범행을 저지른다.
그는 이후 5년 동안 매춘부, 가정주부, 학생 등 21명의 여성을
같은 수법으로 공격하여 13명을 죽인다.
주로 영국 요크셔에서 범행을 저질렀고 1800년대 매춘부 살인범
잭 더 리퍼 사건과 유사하다 하여 그에게 '요크셔 리퍼'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1981년 잠복중이던 경찰에게 매춘부와 함께 있던 현장을 붙잡힌 후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후에 교도소 정신과 의사에게 정신이상 판정을 받고
병원으로 이송된 후 동료 환자에게 눈을 찔리는 사고를 당했다.
15. Michael Bruce Ross
마이클 브루스 로스(1959년 7월 26일 ~ 2005년 5월 13일 사형)
1981년에서 1984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코네티컷 주와
뉴욕 주 일대에서 8명의 여성을 강간하고 살해했다.
보험 세일즈맨이었던 브루스는 코티네컷에서 49년동안 사형당한 유일한 사람이다.
16. Albert DeSalvo
앨버트 데살보(1931년 9월 3일 ~ 1973년 11월 25일 사망)
앨버트 데살보는 보스턴에서 300여명을 성폭행하고
그 중 13명을 죽인 연쇄살인범이자 강간범이다.
그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끔찍하게 폭행하는 것을 보고 자랐다.
(치아를 모두 부러뜨리고, 손가락을 구둣발로 하나씩 부러뜨리는 정도였음)
17세에 군대에 입대하여 유럽에 파견되어 독일 여성과 결혼 후 미국으로 돌아와
행복하게 잘 살다가 9살 소녀를 성추행하여 교소도에 수감된다.
출소 이후에는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일할때 입었던 푸른작업복을 입고
300여명의 독신 여성들을 무차별 성폭행하여 '그린맨'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그린맨'이 활동하던 당시에 같은 보스턴에서는 여성들을 칼로 난자하는 등
잔인한 수법으로 살해한 '보스턴 교살자'가 범죄활동 중이었다.
데살보는 검거된 후 재판에서 자신이 '보스턴 교살자'이면서 '그린맨'이라고 주장한다.
재판에서는 데살보의 자백밖에 없는 상태에서 그 주장을 받아들이면서도
'보스턴 교살자' 혐의는 취하하고 '그린맨' 혐의만 유죄로 인정하여 종신형을 선고한다.
(데살보가 둘다 인정한 이유는 책이나 영화 관련 유명세 때문이라는 설이 있고,
그의 주장을 받아들인 이유는 '보스턴 교살자'의 진범을 못잡으니 협상을 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데살보가 잡힌 후 '보스턴 교살자'의 범행이 멈춘 것은 우연의 일치일지...)
데살보는 교도소에서 동료 죄수에게 칼에 찔려 죽임을 당한다.
17. Joel Rifkin
조엘 리프킨(1959년 1월 20일 ~ 현재 수감 중)
리프킨은 17명의 매춘부를 죽이고 시체를 유기하여
뉴욕 주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범인이지만
희생자가 마약에 찌든 매춘부라는 이유로 '테드 번디'처럼 유명하지는 않다.
리프킨은 양부모에게 입양되었고 몸이 약하고 말을 더듬어 따돌림을 받으며 자랐다.
청소년기에 학교를 그만둔 그는 잡일을 해서 돈을 번 후 마약과 매춘부에 찌들어 살았다.
리프킨은 1989년 첫 살인을 저지른 뒤 시체를 토막내어 각기 다른 지역에 유기했고
같은 수법으로 4년간 17명의 매춘부를 죽이고 시체를 유기했다.
1993년 번호판을 달지 않은 상태로 차를 몰다가 경찰에 걸렸는데
이때 그의 트럭에는 썩어가는 시체가 있었다고 한다.
결국 리프킨은 203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매춘부들을 위한 재활 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18. John Wayne Gacy
존 웨인 게이시(1942년 3월 17일 ~ 1994년 5월 10일 사형)
게이시는 수많은 소년들을 강간하고 그 중 33명을 살해한 연쇄 살인범이다.
그가 잡힌 후 어릿광대 분장을 하고 자선공연을 자주 했다는 것이
밝혀져 후에 '광대 살인마'라고 알려졌다.
게이시는 알콜중독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으며
키도 작고 뚱뚱하고 소심하고 동성애자인 자신에게 극심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른 나이에 결혼해서 체인점을 운영하며 여유있게 살다가
1968년 소년을 강간한 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고 아내와 이혼한다.
그 후 모범수로 2년만에 가석방된 게이시는 다시 시카고에서 결혼하고
하청업체를 운영하며 지역에서 명망높은 사업가로, 헌신적인 자선가로,
정치에 입문하여 청년 회의소 위원직을 맡으며 살았다.
하지만 동시에 하청업체를 찾아온 구직자, 부하직원, 소매치기 등을
닥치는 대로 납치하여 고문과 성폭행을 가한 후 목을 졸라 죽이고
그 시체를 거실 벽장 지하실에 버렸으며 나중엔 지하실 공간이 부족하여
지하실 바닥을 파고 뭍거나 강에 버리기도 했다.
비명소리를 들은 주민의 신고로 게이시를 찾아온 경찰이
그가 둘러대는 말을 믿고 돌아가는 등 그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하지만, 1978년 15세 소년이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찾으러
게이시의 하청업체를 찾은 후 실종되자 그의 부모가 게이시를 신고했고,
이때 그의 전과 사실을 알게된 경찰의 수색으로 그의 집에서 엄청난 수의 시체가 발견된다.
결국 14년의 재판 끝에 사형이 선고되었고,
그가 사형집행을 당하기 전에 한 마지막 말은 'kiss my ass' 였다.
19. Charles Cullen
찰스 컬렌(1960년 2월 22일 ~ 현재 수감 중)
컬렌은 16년간 요양원과 병원에서 약물로 40여명을 살해한 간호사이다.
그는 2003년 뉴저지주의 메디컬 센터에 입원한 카톨릭 신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었다가
추가로 6명의 환자에게 약물이 과다투여된 것이 밝혀졌고, 이후 이 환자들 모두가 죽었다.
컬렌은 검찰 조사에서 메디컬 센터에서 12~15명을 죽인 것과
16년 동안 10여곳의 병원에서 40여명의 환자를 죽인 것을 순순히 자백했다.
컬렌은 자신을 '환자의 고통을 끝내준 자비의 천사'라고 표현했으며
법원이 그의 행위가 인간적인 동정의 발로였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항의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가석방이 불가능한 397년형을 선고했다.
20. Gary Ridgway
게리 리지웨이(1949년 2월 18일 ~ 현재 수감 중)
게리 리지웨이는 100여명의 매춘부를 강간하고 교살하여
그린강에 시체를 버렸기에 '그린 리버 킬러'라는 별명을 가진 연쇄 살인범이다.
이 사건 또한 20년 동안이나 미궁에 빠졌던 사건이라 수많은 영화, 책, 드라마가
쏟아져 나오고 '그린 리버 밴드'라는 록밴드까지 결성되었다.
(그린 리버 밴드는 리지웨이가 잡히자마자 인기가 없어져 해체되었다;;)
그는 양부모에게 입양되어 언어폭력을 당하며 자랐다.
리지웨이는 성격 자체가 좋아 매춘부와 2번의 결혼을 했지만
두 번 모두 잠자리에서 목을 조르는 변태적인 행위가 원인이 되어 이혼을 당했다.
리지웨이는 주로 1982년과 1984년의 2년 동안 48명의 매춘부를 살인했다.
하지만 그 후 결혼을 하여 잡힐 때까지 13년이나 행복하게 부인과 살면서
살인 충동이 많이 줄어들어 1990년과 1998년의 범행 외에는 조용히 지낸 편이었다.
사건의 경과를 보자면 1982년 최초로 그린강에서 시체 3구가 발견되고
6개월 후 6구의 시체가 추가로 발견되었지만
피해자가 매춘부인 까닭에 범인을 밝히기는 커녕 피해자의 신원도 밝혀내기가 힘들었다.
이에 거센 여론이 일자 그린 리버 킬러 전담팀이 꾸려졌다.
1983년 한 남자가 자신의 여자친구가 납치되는 현장을 보고 차를 쫓아가
리지웨이의 집까지 알아내어 신고했지만 증거를 못찾고 돌아갔다.
1987년에는 한때 매춘부였던 여성이 자신의 전남편이 자기 목을 자주 졸랐으며
그린 강에 자주 갔다는 제보를 해 리지웨이를 체포하지만 역시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결국 14년 뒤인 2001년 전담팀에서 희생자들의 DNA를 모두 분석하고
용의자들의 DNA와 비교한 후에야 리지웨이를 체포할 수 있었다.
후에 리지웨이는 매춘부는 실종되도 신고가 제대로 되지 않아 피해자로 선택했고
죽인 이유로는 매춘부에 대한 증오심과 돈을 지불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진술했다.
리지웨이는 확인된 48건의 살인에 대해 48번의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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