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전에 한마디하자면 나는 가수다가 2011년인 재작년에 시작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역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는 어른들의 말씀은 진리였나보다. 내 맘을 완전히 흔들고, 오랜만에 감성에 젖게 해주었던 공연들이 벌써 2년 전에 있었던 일이라뉘;;;
'나는 가수다'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며 승승장구하던 시기에 가수들의 서바이벌을 내세우며 등장했던 충격의 프로그램이었다. '쌀집 아저씨'로 유명한 김영희PD가 미친 인맥을 과시하며 1기로 섭외한 가수들의 면면은 사람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나 또한 3월 6일 첫방송을 얼마나 여러번 봤는지 모른다.
프로그램의 성격이 그러하다보니 보는 이들도 주인공인 가수들도, 매니저 역의 개그맨들도 모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얼떨떨했을 것이다. 물론 파격적인만큼 단숨에 전국민의 이목을 사로잡았고 결과적으로 김건모 재도전에 프로에 대한 애정만큼 분노했던 것일게다. 하지만, 한 달의 공백 기간을 가진 뒤 더 화려하게 부활했고 예능보다는 공연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더 긍정적으로 변하게 되고 더 사랑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김연우가 탈락하고 임재범이 나가고 다음 가수들이 참여하면서 조금 식기 시작한 열기가 기존 멤버들이 명예 졸업하여 나가면서 가끔씩 보다가 결국 아예 안보게 되었다. 그 뒤로 어떤어떤 가수가 엄청난 무대를 꾸몄다더라..라는 얘기가 들려와도 시큰둥했던건 1기 멤버들에 대한 애정이 강했기 때문이리라.
1기 멤버들은 박정현, 김범수, 김건모, YB, 백지영, 이소라, 정엽이었고, 그들이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가수다'에 대한 내 애정도 사그라들었다. 그런만큼 나에게는 '나는 가수다'의 초반 무대 하나하나에 큰 애정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시기(2011/3/6~2011/5/22)에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무대를 뽑아보았다. 이 리스트는 본인의 노래를 부른 공연도 포함한 리스트이며 순전히 개인적인 리스트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무대는 보는 이를 어떤 식으로든 마비시키는 공연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들이 얘기하는 '몰입도'라는 말로 바꿔 말할 수 있을텐데, 다른 생각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던 무대가 100번 보아도 똑같이 그런 상태가 된다면 정말 최고의 무대가 아닐까한다.)
1. 김범수 - 제발(이소라), 3월 27일 '노래 바꿔 부르기' 1등
노래를 정말 부르는 김범수가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노래 중에서도 정말 잘 부른 노래라고 생각한다. 김범수의 '제발'은 김건모 재도전 사태의 최대 수혜자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노래가 1등 하자마자 1달을 휴방하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나는 가수다'에 대한 목마름을 이 노래로 풀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2011년 2월 28일부터 6월 25일까지 2600만여 명이 음원 다운로드 및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들었다고 하니, 이만큼 수혜를 받은 곡도 드물 것이다.
2. 김건모 - You are my lady(정엽), 3월 27일 '노래 바꿔 부르기' 4등
이 공연 일주일 전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부르고 탈락하게 된 김건모는 재도전을 하기로 한 방송이 나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평생 먹을 욕을 먹게 된다. 내 성격상 남을 판단하여 뭐라 하는 걸 못하기에 나는 욕하지 않았지만, 나만 빼고 다 욕한 것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 당시 김건모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런 상태에서 부른 노래가 이 노래이다. 항상 무대를 즐기기로 유명한 김건모가 손을 떨고, 음이탈까지 했다. 결과적으로 이 노래를 부르고 스스로 프로에서 빠지면서 용서 받고, 오히려 더 유명해지고, 사랑받게 되었지만 말이다. 역시 가수는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무대이다.
3. 박정현 - 미아(본인곡), 5월 1일 1라운드 '대표곡 부르기' 2등
본인곡이지만 이 무대를 보기 전에는 모르는 곡이었기에 나에게는 '나는 가수다'의 곡으로 남아있다. 박정현이 말하고 원했던대로 이 무대 후에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다. 나는 이 노래의 광팬이 되었고, 기분이 우울하거나 센치해질때는 어김없이 이 노래를 듣는다.
4. 임재범 - 너를 위해(본인곡), 5월 1일 1라운드 '대표곡 부르기' 1등
역시 본인곡이지만, 이 무대 전에 나는 일반인이 노래방에서 부르는 걸 빼곤 노래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역시 임재범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임재범과 이 노래 모두 나에게는 '나는 가수다'의 가수와 노래로 깊게 각인되었다. 처음 무대에 등장할때부터 그 카리스마에 빠졌고 한동안 이 노래에 빠져 허우적댔던걸로 기억한다. 가수가 기교만 좋다고 좋은 가수가 아님을 제대로 보여준 가수가 임재범이 아닐까한다.
5. 박정현 -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조용필), 5월 8일 '내가 부르고 싶은 남의 노래' 1등
'나는 가수다'로 사랑하게 된 가수 박정현의 이 무대는 한마디로 완벽한 무대였다. 기승전결이 있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달까. 이 뒤로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많은 가수 꿈나무들이 이 노래로 가창력을 뽑냈다는 설이 있더라.
6. 김연우 - 나와 같다면(김장훈), 5월 22일 '네티즌 추천곡' 4등
비운의 김연우라고 부르고 싶다ㅠ 다른 라운드에서였다면 그도 전설이 될 수 있을 실력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김연우가 탈락했던 이 주에는 박정현을 제외하고는 모든 가수들이 자신의 베스트 공연이라고 할 만한 공연을 펼쳤으니 대진운이 나쁘다고밖에 할 수 없을 듯하다. 물론 김연우도 최고의 공연을 펼쳤지만 말이다. 이때 김연우를 제쳤던 임재범의 '여러분', BMK의 '아름다운 강산', 김범수의 '늪' 등의 무대는 퍼포먼스성 무대여서 나중에 안보게 되었지만, 김연우의 무대는 자꾸만 보고싶게 만드는 무대여서 탈락이 더욱 안타깝다.
번외
남진 - 비나리(심수봉), 9월 12일 '나는 트로트 가수다 추석 특집' 1등
'나는 가수다'의 추석 특집이었던 '나는 트로트 가수다'는 순전히 '나는 가수다'에 대한 애정으로 본 프로였지만, 이 무대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꼴찌를 면하기 위해 많은 쟁쟁한 트로트 가수들이 고음을 내지르고 파격적인 무대를 꾸미는 와중에 남진은 유독 잔잔하게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도 듣는 내내 눈물이 흐를 정도로 감동적인 무대였다. 이 무대는 남진의 진정한 연륜을 보여준 무대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 곡은 내 핸드폰에 유일하게 저장된 트로트 곡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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